어어부밴드 - 손익분기점 (1997)

어어부밴드 - 손익분기점 (1997)

01. 담요세상 
02. 녹색병원 
03.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 
04. 쏘세지깍두기(웩)  

   미대출신의 또라이 시인과 실패한 뉴웨이브 베이시스트, 그리고 딴짓을 잘 하는 국악 천재가 만나서 낸 결과물은 이랬다. 

  한국에서 가장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밴드의 음악여정의 출발점. 글쎄, 이 앨범이 찬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표면적인 이유로는 네 곡밖에 안되는 EP에 참신한 시도들을 하나둘도 아니고 있는 대로 퍼부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들이 기괴하다거나(아, 기괴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 난해함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익숙해서 낯설게 다가오는 결과물들의 재조합의 형태로 나왔다는 것이다.
  1번 트랙에서처럼 장구를 주 리듬악기로 사용한다거나, 4언절구의 구조를 가사에 그대로 박아버리거나, 아니면 3번 트랙에서처럼 뽕짝이 사회적으로 소비되는 형태에서 출발하여 이를 재구성, 뽕짝의 감성을 지독하리만치 그 원형에 가깝게 구성해버린다거나 그런 시도들 말이다. 3번 트랙에서 잡히는 감성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빈민가 남성의 절규 그 자체였다(이 노래의 가사가 고전적인 작시의 규칙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 알게 되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내가 이 앨범을 듣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한국의 뮤지션 중 '음악을 만든다'와 '노래를 만든다'를 구분할 줄 아는 뮤지션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 즉 이는 '노래'라는 개념이 이 땅의 뮤지션들에게 함정과 한계선으로 작용했다는 것인데, 이 둘은 부지불식간에 이 둘의 차이를 완벽하게 인식하고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들은 불려지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지극히 불려지기 좋은 형태의 곡들을 부를 수 없는 스타일로 만들었던 것이다.

(2009. 1. 19에 추가)

  3번 트랙을 트롯의 시뮬라크르로 볼 수 있을까? 솔직히 이제 이런 80년대 이론들 써먹는거 지겹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장자가 춘추전국시대부터 생각해냈던 세계인식의 틀이기도 하니까 마냥 지겹다고 하긴 뭐 할 듯. 하여간, 시뮬라크르의 정의로만 따진다면, 이 곡은 외관상으로 상업용 트롯, 즉 '뽕'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사하면서도 진짜 뽕들을 가리고 덮어버릴만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곡은 '나는 뽕이에요' 하면서 뽕이 하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 이 곡은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뽕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구전가요가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구전가요가 하는 짓을 하고 있다. 구전가요의 특질을 구성하는 요인들 중 하나인 전달의 형태에서 완전히 구전가요와는 반대이지 않는가. 이 곡은 입 대신 물질화된 미디어를 타고 전파되고 있다. 그런데도 구전가요의 정서적 특징은 취하고 있다. 구전가요는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군대에서 은밀하게 불려지는 신세한탄조의 곡을 생각해보라.

by 미크로권태 | 2009/01/18 09:31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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