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 반성의 시간 (2008)

백현진 - 반성의 시간 (2008)

01. 무릎베개
02. 학수고대했던 날
03. 목구멍
04. 어머니 검도 교실
05. 닉의 고향
06. 깨진 코
07. 어떤 냄새
08. 여름 바람
09. 눈물 닦은 눈물
10. 보험 회사 대중탕
11. 어른용 사탕
12. 아구탕에서 나온 네명 

이 앨범, 할말 참 많다. 다분히 도회지적이면서도 빈곤하고 우울한 백현진의 '슬픈 주파수'도 그렇고, 나름 일가를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창법도 그렇고, 시인으로 봐도 무방한 가사쓰기도 그렇고, 더이상 다다스러운 가사쓰기를 그만 두고 '이해가 가능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어찌 되었건 앨범 자체가 정말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하여간, 이 판, 참 괜찮은 앨범이고, 약간 빡센 경합 끝에 2008년 '올해의 앨범'에 이 앨범을 올리기로 했다. (경합을 벌였던 작품은 그림자 궁전의 데뷰앨범과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였다)

그러나, 이 앨범에 대해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앨범 전체는 아니지만 마지막 곡에 녹아 있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다. 이 곡은 토요일 저녁 인사동에서 두 명의 게이가 중년 4인조에게 린치를 당한다는 내용의 서사시인데, 이 곡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이 곡은 하나의 목소리로 불러제낀 한국의 21세기형 악극이다. 노래를 통해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점은 기존의 판소리와 딱히 구별될만한 점은 아닌데, 이 곡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악기들이 기승전결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케다와 히로시의 사랑이야기에서는 일본풍 타악기를 사용한다던지, 이 둘이 키스하는 장면에서 키스의 황홀함을 내려가는 스케일의 플룻으로 재현한다던지 말이다. 이 앨범에서 악기들은 공간을 묘사하기도 하고, 사건을 지탱하고 있다. 특히, 극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효과음 없이 타악기만을 사용해서 긴장감을 고조하는 대목은 실로 놀라웠다. 이는 백현진이 스스로 그려왔던 악기의 이미지와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곡을 몇 번이고 돌려듣고 나서, 나는 마치 이 노래가 서울판 율리시즈(그리스 신화 말고 조이스의 바로 그 괴팍한 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토론토, 서울, 경주 등 공간과 그 공간의 사람들이 어쩌다가 인사동이라는 특정 장소에 모여들어 어쩌다 보니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건 그냥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더블린의 수 많은 사람들이 낮 동안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더블린이라는 소우주 속의 개미들이라는 그런 이야기.(이건 순전 개인적인 해석임) 이들 역시 인사동이라는 하나의 소우주의 개미들이다.

또한, 나는 이 곡을 21세기 아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녕 아리랑이 고통받는 민중들을 달래주던 노래라면, 21세기의 아리랑 역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노래가 되어야 하며, 성 소수자에게 아리랑이 없으리란 법 없고, 이들 역시 자신들의 아리랑(게이 아리랑, 트랜스 아리랑, 레즈 아리랑 뭐 이런 식으로. 혹시 쓰리섬 아리랑 이런것도 나오려나?)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 곡이 핍박받는 게이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어줄 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건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아리랑이 살아남으려면, 고통받는 자들을 쓰다듬는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다.

by 미크로권태 | 2009/01/13 18:12 |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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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oolkat at 2009/01/15 08:05
우왁! 넘 오랜만이십니다.
Commented by 미크로권태 at 2009/01/16 13:55
kookkat // 으헉! 오랫만입니다. 제가 그간 넘 게을렀어요. (CD를 안 산것도 이유중의 하나입니다만) 하여간, 와주셔서 고마와요!!
Commented by K군 at 2009/02/19 03:02
이걸 들으며 집에 걸어 들어오는 늦은 시간에 듣다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겨우 참고 들어왔네요.
Commented by 미크로권태 at 2009/02/21 15:31
K군 // 마지막 곡 듣고 저도 버스안에서 울컥했어요.
Commented by 루오바 at 2010/04/21 18:48
안녕하세요..백현진님 공연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5월 1일 토요일 저녁 장충동에 위치한 웰콤씨어터이구요..
자세한 내용은 웰콤씨어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www.welcommthea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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